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 닐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1967년에 16세의 나이로 아마추어팀 웰링보로 타운에서 뛰다가 17세의 나이로 이듬해에 하부리그 팀인 노샘프턴 타운에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6년간 뛰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4년에 신임 감독 [[밥 페이즐리]]가 지휘하는 리버풀에 입단하였다. 당초 코벤트리 시티로 이적한 래리 르로이드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꾸기 위해 영입되었으나, 이후 크리스 로울러가 떠나자 라이트 백으로써 실력을 만개시켰다. 그가 리버풀 소속으로 처음 나간 1974년 11월 16일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이적 동기인 테리 맥더모트와 같이 활동하여 라이벌인 [[에버튼]]과의 대결에서 0-0으로 비기긴 했지만, 페이즐리 감독은 그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는 흡족했다. 이후 닐은 1975년 11월에 안필드에서 열린 [[UEFA컵]] 2라운드에서 [[레알 소시에다드]]를 6-0으로 이겨 첫 득점을 이룩했다. 이후 그는 1977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넣어 팀을 우승시키는 데 공헌했고, 이후 그는 1978, 1981, 1984년에 총 4번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이로써 그는 페이즐리 시대에 데뷔한 리버풀 선수들 중에서 역사상 유일하게 4개의 유러피언컵을 손에 넣은 선수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그는 11년 동안 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동안 그는 7개의 리그 우승, 4개의 리그컵 우승, 4개의 유러피언컵 우승, 1개의 UEFA컵 우승, 5개의 채리티 실드 우승, 1개의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루어내며 총 22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려서 리버풀의 전성기와 맥을 같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84/85 시즌은 참으로 비극 그 자체였는데, 팀의 대장인 [[그레이엄 수네스]]가 떠나면서 구심점을 잃은 리버풀은 리그에서 라이벌 에버튼에게 2위로 우승컵을 놓쳤고, 대신 유러피언컵에서만큼은 노력을 쏟아부어 [[유벤투스]]와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나 이른바 [[헤이젤 참사]]라고 하는 리버풀-유벤투스 간의 유혈충돌 사태로 인해 경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주장인 닐은 경기를 연기하자고 했으나 이러한 수난 속에서 경기는 속개되었고 결국 유벤투스에 의해 1-0으로 패배했다. 이후 닐은 1985년에 리버풀을 떠나고 당시 3부 리그 팀인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해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다가 1989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